
국내 말 산업 1번지 제주에서 퇴역 경주마를 위한 휴양목장 조성사업이 추진된 지 1년이 훌쩍 지났지만, 정작 시설에 입소한 말은 단 한 마리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주마 복지를 위해 휴양목장을 조성하겠다”며 시작된 사업이 구체적인 운영 방안 없이 추진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제주도는 ‘제3차 제주말산업 육성 5년(2024~2028년) 계획’에 따라 퇴역 경주마 복지 향상을 위한 휴양목장 조성 사업을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사업은 일정 규모의 초지를 확보하고, 퇴역마를 자유롭게 방목할 수 있도록 울타리와 패독(운동장) 등 기반시설을 갖추는 내용이다. 사업자는 말 관리 경험과 전문 인력 등 운영 여건도 함께 갖춰야 한다.
첫 해인 지난해에는 제주대학교가 종합승마타운과 연계해 목장을 조성했다. 총사업비는 1억원(국비 50%, 지방비 50%)이 투입돼 울타리와 패독 설치 등에 사용됐다.
올해 2차 사업자로는 제주경주마생산자협회가 선정됐고, 지난해와 같은 규모인 1억원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다.
하지만 사업 추진 1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해당 시설에 입소한 퇴역 경주마는 단 한 마리도 없다. 겉보기엔 휴양목장이라는 틀을 갖춰졌지만, 정작 주인공인 ‘말’이 빠진 셈이다.
이는 휴양목장에 말 입소를 희망하는 마주가 없기 때문이다. 퇴역 경주마 역시 기본적으로 마주의 책임 하에 관리돼야 하지만, 현실적인 부담이 크다는 게 주된 이유다.
말 한 마리를 관리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사료값과 진료비 등을 포함해 월평균 300만원에 달한다. 이 때문에 운영비 지원 없는 휴양목장은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제주도 역시 난감한 상황이다. “퇴역 경주마 복지를 위한 선도적 시도”라며 야심차게 추진한 사업이 결국 ‘빛 좋은 개살구’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뒤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제주도는 5년 계획에 따라 중장기적으로 휴양목장 사업을 추진할 방침이지만, 해마다 운영비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내후년 사업 추진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다.
제주도는 현재 농림축산식품부에 ‘축산발전기금’ 등 명목으로 예산 지원을 요청한 상태다.
농림부는 퇴역 경주마뿐 아니라 학대 구조마 등 케어가 필요한 말을 포괄하는 ‘말 복지휴양목장’ 개념으로 사업 외연을 확대해 예산 지원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도 관계자는 “당초에는 퇴역 경주마를 위한 휴양목장으로 계획했지만, 운영비 확보가 어려운 상황에서 농림부와 협의하던 중 ‘말 복지휴양목장’으로 범위를 넓히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 중”이라며 “현실적으로 자체 재원만으로는 운영이 어려운 만큼, 농림부를 최대한 설득해 예산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생명환경권행동 제주비건 김란영 대표는 운영계획 없이 휴양목장을 지원하고 조성했다는 자체가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김 대표는 “제주도가 추진했던 휴양목장은 마을공동목장을 활용하는 것이었는데 지난해와 올해 선정된 사업자의 경우 당초 취지에 벗어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간 동물단체에서는 여러 마을공동목장을 알아보러 다녔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도에 여러번 운영위원회 설치를 제안도 했었고, 또 올해 초 학대에서 구조된 말을 이미 조성된 휴영목장에 입소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며 “상황에 적절히 대처하면서 운영계획을 논의하고 운영비도 조성하면서 예산을 편성해야 하는데 설계부터 잘못됐다”고 지적했다.